양조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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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보호하는 술, 조선 3대 명주 '감홍로'
몸을 보호하는 술, 조선 3대 명주 '감홍로’ 감홍로는 조선시대 평양이 속한 관서지방 최고의 술로 꼽히는 조선 3대 명주인데요. 이 술을 접한 외국인이 '조선의 위스키 같다'라고 할 정도로 매력적인 술입니다. 붉은 빛을 살짝 머금고 있는 황금빛의 술은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먼저 사로잡고, 스파이시한 계피 향을 앞세워 그 뒤로 다양한 약재향이 은은하게 뒤를 받치며 또 한번
술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특히, 감홍로는 따뜻한 성질을
지닌 7가지 약재를 넣어 우려내기에 맛과 향뿐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살피는 술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위스키나 진, 예거마이스터
등 술이 약처럼 쓰였던 것처럼 감홍로도 그 옛날 조선에서 약을 대신하기도 했을 겁니다. 빛과 향, 맛과 몸까지 생각한 술이니 풍류를 아는 선조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술이 아니었을까요. 감홍로의 명맥을 이어온 이기숙 명인과 남편 이민형 대표를 파주에서 만났습니다. 이 명인은 감홍로가 단순히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너머, 술을
빚을 때의 마음과 술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사이의 마음의 온기도 나눌 수 있는 술이 되기를 바란다며 저희를 양조장으로 맞이해주셨습니다. Q. 안녕하세요. 감홍로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기숙 명인 감홍로는 이름에서 보이듯 달콤하고(甘), 붉은 빛깔을 띠는(紅) 이슬
같은 술이라는 뜻인데요.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露) 맺히기 때문이죠. 조선 3대 명주 중 으뜸으로 꼽히는 술이고, 특히 평양에서 유명한 술이에요. 감홍로의 밑술을 빚을 때 쌀과 함께 메조(찰기가 없는 조)를 7대 3의 비율로 섞어
찌고, 여기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를 합니다. 술이 익으면 1차 증류에서 끝나는 대개의 소주와 달리 감홍로는 한 번 더 숙성하고 증류를 시켜요. 이 시간을 통해 맛과 향에 깊이를 더하는 거죠. 이렇게 두 번의
증류 후에 7가지 약재(용안육, 진피, 정향, 생강, 계피, 감초, 자초)를 침출시켜 마치 약재를 다리는 것처럼 술을 만들어 냅니다. Q. 감홍로만의 특별함은 역시 약재에서 어우러지는 맛과 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약재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A.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서적인 '식물본초'에 '감홍로가 우리 배 안의 고를 죽였다'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대개의
술을 마시면 몸 밖으로는 열이 나지만 내장기관은 차가워지기 마련인데,
감홍로는 다른 술과 달리 장을 따뜻하게 만들어 줘요. 감홍로에 들어가는 약재가 대부분 따뜻한
성질을 지녔거든요. 감홍로의 단맛에 중심이 되는 용안육은 동남아 지방에서 나는 열대과일로 용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요. 장을 따뜻하게 데워 배앓이를 낫게 하고, 혈액순환을 도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정작용에 도움이 주는 약재입니다. 귤껍질을
말린 진피는 다량의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서 피로를 풀어주고, 정향은 외국에서도 많이 사용하는데 살균력이
강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진통제 역할을 합니다. 생강은 막힌 혈을 뚫어주고, 면역력을 올려주는데 도움을 주죠. 저희가 빚는 감홍로는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내국 감홍로'와 비슷한데, 내국(內局)은 조선시대
국가의 약재를 담당하던 기관이었어요. 궁중에서도 몸을 보호하는 술로써 감홍로를 빚었겠구나 추론을 하는
거죠. Q. 평양의 술을 이젠 평양에서 쉬이 맛볼 수 없다고 들었어요 A. 원래는 할아버지께서 평양 근처에 평촌 양조장을 설립해 술을 빚었고요. 아버지이신 고(故) 이경찬
옹께서 그 양조장을 이어 받아 운영하셨어요. 당시 대지 7,000평에
종업원이 80여명 가까이 됐고, 1년 치 세금이 평양시 한
해 예산과 비슷할 정도로 잘 되었다고 해요. 예견치 못한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으셨어요. 그런데 1964년 발표된 양곡관리법으로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면서 남한에서도 명맥이 끊어질 위기도 있었죠. 그나마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나 몰래 술을 조금씩 빚어서 나누셨던 기억이 나고요. 1986년이 되어서야 전통주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어요. 이후에 아버지께서 작은 오빠에게 감홍로주 제조 기술을 공식 전수하게 되었는데, 작은 오빠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 곁에서 오빠와 함께
술을 배웠던 제가 감홍로의 전통을 잇게 되었고요. 제가 명인으로 지정받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죠. 명인 제도가 명인에게서 20년간 전수를 받도록 되어 있거든요. 다행히 뒤늦게라도 아버님으로부터 오빠와 같이 술을 빚었던 부분을 인정받게 된 겁니다. Q.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참
많은 어려움을 거쳐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술을 만드시면서 특별히 더 중요하게
여기신 부분이 있었을 거 같아요. A. 술에 들어가는 재료를 포함해서 누룩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발효와 발효를 위한 관리 과정, 증류, 약재 선별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어요. 위 과정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바로 술맛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게 아니라고 술이
얘기를 합니다. 술을 만들다 보면, 자연 환경에
따라서 이상발효가 생길 때도 있어요. 날씨가 갑작스럽게 덥거나 춥거나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때 아버지는 술맛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마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다시 말해 술을 빚을 때 순간순간 정성을 다해서 술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
게 가장 우선이고요. 잘못 되었을 때 그걸 어떻게 고치려고 하다기 보다는 과감하게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생기는 거 같아요. 아직도 아버지가 새벽 일찍 술 항아리 옆에서 술을 지켜보시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제가 남편과 감홍로라는 술을 빚고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Q. 남편이신 이민형 대표님이 감홍로를 담아내는 주병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민형 대표 현재 존재하는 우리나라 주병은 거의 일정하고 특색이 없는 편이죠. 그래서
감홍로를 담을 때 우리나라의 모양을 보여주고자 주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잘 어울리는 주병을
만들기 위해서 도자기 공장과 1년 반 정도 다양한 주병 디자인을 두고 씨름했죠. 처음에는 우리의 모양인 초가집을 연상해서 디자인하려고 했어요. 점차 잊혀져가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꼭 주병에 담고 싶었죠. 하지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 다음에 떠올린 것이 한복의 치마로 지금 주병의 모티프가 되었죠. 주병의 색깔도 감홍로의 빛깔과 고민해서 여러 색을 고민했어요. 유약과 높은 온도를 잘 다뤄야하는 검은색 도자기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주병의
색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감홍로의 빛깔과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참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담은 주병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현재는 트렌드에 맞게끔 베이지색에, 젊은 층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Q. 술병의 부조된 문양도 눈길을 잡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A. 술병의 돋을새김된 문양은 집과 날개, 그리고
꽃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감홍로가 가져가야할 가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집은 가정의 화목함을 의미하고, 날개는 나비의 창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의 주류 문화를 창조해 꽃을 피우고, 세상에 널리 알리자는
의지를 담은 거죠. 문화라는 것이 단절되면 복원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쉽사리 잊히기도 하고요. 저희가 하는 역할은 문화의
단절을 막고 중계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저희가 항상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고, 그걸 표현한 겁니다. Q. 앞으로 감홍로나 양조장이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이기숙 명인 우선 저희는 술의 질을 높이는 데 지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서 영월의 한 농장에서 메조를 직접 생산하기 위한 노력하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노력을 계속 이어갈 거고요. 양조장은 파주의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술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오셔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민형 대표 우리 양조장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감홍로를 문화의 가치로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다른 방향으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홍로가 따뜻한 술, 마음도
편해지고 관계도 따뜻해지는 술로서 당시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큰 경제적인
가치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지금 현재에 필요한 술이 또 있을 겁니다. 그런 술을 고민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다양한 약재의 향이 어우러진 감홍로의 향은 독특합니다. 높은 도수임에도 부드러운 편이라 독주를 꺼려하는 분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술을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감홍로 제조에 사용하는 재료 침출액이 항산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논문으로 확인돼, 과학적으로도 감홍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기숙 명인과 이민형 대표는 감홍로를 따뜻한 술이라고 말합니다. 몸을 따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촉매제로써 역할이 크다고 강조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여러 고전 문학에도 감홍로가 자주 등장하죠. 춘향이와 이몽룡의 안타까운 이별에도,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의 간을 유혹할 때도, 황진이가 시를 읊을 때도 말입니다. 포암 이경찬선생님은 술을 담을 때 평소와 다르게 매우 엄격했으며 밤잠을 서리면서 술 항아리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간 감홍로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술을 아버지가 소중하게 간직해 복원했으며, 이제 는 사랑스러운 막내딸이 아버지를 기억하며 따뜻한 감홍로를 빚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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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술을 만드는 곳, 술아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세요.”
이 말이 유행처럼 발에 차여 희망을 그린 적도 있고, 어떤 시기엔 너무나 달콤하지만 무책임한
문장이 폭력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 거야’ 라고 선언하는 것은 멋지지만,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저지르면서 사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강희진 술아원 대표도 전통주를 배우기 전까지는 평범한 주부였다. 일찍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미처 하지 못한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커피, 꽃차, 와인, 위스키 수업 등이 강 대표 손길을 스쳐갔다. 배움의 시간은 즐거웠지만, 사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통주는 달랐다. 술을 만드는 게 고되고 힘든 걸 알지만
재밌었다. 강 대표는 우리 술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도전했다. 그렇게 8년, 강진희
대표의 손끝에서 과하주와 여주 땅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우리 술이 익어가고 있다. Q. 주부로서의 삶과 양조장 대표로서의 삶이 많이 다르겠죠? A. 에전에는 정말 너무 모르고 사는 게 많았구나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정수기 필터 혼자 교체하는 건 이제 너무 쉽죠. 양조장을
운영하면 작은 기계가 고장 나면 제가 스스로 고칠 줄 알아야 돼요. 지금도 항상 관련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공구상 사장님한테 질문도 스스럼없이 하고요. Q. 기계 이야기가 먼저 나올 줄은 몰랐어요. A. 새롭게 양조장을 시작하려는 사람 중에 술을 만드는 행위를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마상 일을 접하면 문과적인 성향보다 이과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해요. 기계도 많이 알아야 하고요. 도 신체적으로도 힘이 들 때도 많고, 일손이 부족해서 그만둬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하루하루
제가 좋아하는 술 빚으면서 7년이 지났네요. 술아원은 지난 2020년 양조장을 새롭게 지었다. 제조장 중심의 양조장을 뛰어넘어, 체험형 양조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제조 시설은 설계 단계부터 HAcCP 인증을 염두에
두면서, 현 규모에 맞는 시설 고도화에 중점을 뒀다. 양조장이
자리할 위치를 알아보고, 적합한 시설을 구축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는 강진희 대표의 말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동시에 읽혔다. Q. 술에 대한 진심, 그러니까
진정성이 느껴지는데, 대표님을 이 길로 이끈 게 과하주라는 술이죠? A. 네, 그런데 처음에
과하주를 접했을 때는 너무 맛이 없었어요.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과하주를 빚어서 마셨는데, 바로 집에 있는 냉장고에 넣었어요. 맛이 없어서. 냉장고에 과하주가 있는 지도 모르고 1년쯤 지났을까요. 우연히 꺼내서 마셨는데 전혀 다른 맛을 느꼇죠. 다른 약주에서 경험하지
못한 맛이 느껴지는데 너무 좋았어요. 과하주의 첫인상은 달콤함이다. 잔에 부을 때부터 달달한 향이 느껴지고, 꿀 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술보다 점도가 있음을 알 정도의 느낌으로 술이 잔에 흘러내린다. 혀끝을 지나면 희석식 소주 같은 어느 정도의 알코올 도수가 느껴지고, 그
사이로 참외 바닐라 계피의 향, 약간의 산미도 발견할 수 있다. Q. 깊은 맛의 차이, 과하주를
만드는 과정이 다른 술보다 특별한 게 있나요? A. 과하주는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 술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해서 빚는 술이에요. 약주
발효 중간에 도수가 높은 소주를 넣어 알코올 발효를 일반 약주보다 적게 일어나게 해요. 이 과정에서
단맛이 강하면서도 도수는 높은 새로운 매력이 나오는 거죠. Q. 그럼 여름철에 마시는 술인가요? A. 여름을 넘길 수 있는 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계절 모두 즐길
수 있는 술이기도 해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양조 기술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소비자들에게 모든 계절에 과하주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계절별로 상징하는 꽃을 넣어서 향을 추가하고
있어요. 가을에는 국화꽃 향을 입힌 술아 국화주나 곡물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술아 순곡주를 추천해드리죠. 술아원은 지난 2014년 3월에
4종의 과하주 ‘술아’를
출시했다. 꽃차 자격증을 가진 강 대표가 매화, 연꽃, 국화 등 계절 특성을 살린 꽃잎을 넣어 향을 다양화했다. Q. 아무래도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아요. A. 실제 매출 데이터도 그런 편이에요. 처음 술을 만들 때 20대 여성이 좋아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 30~40대
여성도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한 거죠. 다만 철저하게 기획된 마케팅이기 보다, 내가 어떻게 소비하는가 생각하면서 쉽게 접근했고 그게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거 같아요. Q. 어릴 땐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가성비를 찾게 되잖아요. 구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A. 잘못된 마케팅 방법이라는 조언도 많았어요. 그런데 과하주는 1950년대 이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술이에요. 당장 과하주를 알리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다시 이 술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면, 지금 40~50대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보다 젊은 세대의 입맛에 조금씩 각인 되는 게 낫죠. 그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구매력이 생겼을 땐 과하주가 익숙한 우리 술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술을 판매한 지 8년쯤 됐어요. 20대 초반이던 분들이 30대가 되는 시점이 됐고요. 요즘 코로나 19로 혼술과 홈술도 늘면서 20대 사이에서도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게
되어 구매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어요. 과하주 ‘술아’를 담는
병은 375ml 아이스와인 병을 쓴다. 각 제품 라벨 디자인도
이삼십 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젊은 감각을 입히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Q. 기사를 찾다 보니까 게임 회사랑 콜라보도 하셨더라고요. A. 결과적으로는 게임 회사 내부 환경의 변화로 끝까지 추진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이색적인 시도죠. 제가 못하는 부분을 잘 하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거예요. 저는 홍보가 여전히 부족하고 또 약한 부분이라서 전통주를 알릴 수 있다면 어떤 분야든, 이색적인 콜라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Q. 이색적인 시도에 항상 열려있다는 말이 다양한 술을 선보이는 술아원의
노력과 일맥상통 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A. 일단 기본적으로 제가 술을 좋아해요. 다양한 술을 많이 접해봤고, 좋아하는 술의 종류도 많아서 다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제가 지금 양조장을 하고 있으니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돼요. 그래서 복분자 농사를 직접 지어서 복분자 술도 만들었어요. 복분자
술인 복단지는 지금 술아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술이 됐고요. 앞으로는 허브를 넣은 술이라던지 우리
땅에서 나오는 다양한 재료로 술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통주의 인식 변화오 폭을 넓히고 싶어요. Q. 고구마 술도 만들고 있잖아요.
A. 술아원이 여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술아원이 만드는 술은 여주가 고향이 됐어요. 여주를 함께 알릴 수
있는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면, 지역 농가와 로컬이 함께 상생할 수 있어요. 여주 특산물인 고구마는 생산량은 많은데, 수입 고구마나 다른 지방의
고구마에 비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고구마로 술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걸 고민했죠. 일본에서는 고구마 소주를 많이 마시거든요. Q. 특산물 얘기가 나왔으니, 여주의
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우리 술은 쌀과 물, 누룩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A.여주는 옛날부터 물과 쌀이 좋기로 유명하죠. 여주 쌀은 조선시대 왕에게 진상했어요. 그만큼 품질이 뛰어나요. 술아원이 여주에서 터를 잡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과하주는 여주산
찹쌀만을 이용해서 만들어요. 경기미 중에서도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 재료에 비용을 아끼지 않아요. 아직은 오랜 기간 술을 만들어 오신 분들에 비해 내세울
기교 같은 게 없어요. 좋은 재료 쓰고 그때그때 술 열심히 빚는 거죠.
여주는 쌀농사를 짓기에 좋은 일교차를 지니고 있다. 벼가 익는 8월과 9월, 다른 지역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당도와 전분이 많은 쌀이 생산된다. 여주를 끼고 흐르는 남한강은 풍부한 수량을
제공하고, 도자기를 생산할 만큼 규산과 유기물 함량이 높은 좋은 토양도 지니고 있다. 쌀 이외에 고구마와 인삼 등도 많은 재배면적을 차지 하고 있다. Q. 다섯 가지 과하주, 복분자
술, 고구마 소주, 막걸리까지 부지런히 술을 빚고 있는데, 힘든 점은요? A. 혼자는 도저히 할 수 없죠. 본부장을
맡고 있는 동생과 연구실장을 하고 있는 아들 덕분에 지금까지 술아원이 존재할 수 있었어요. 이곳으로
양조장을 옮기기 전에는 장소도 협소하고, 시설도 빈약했어요. 힘들
때마다 두 사람이 큰 힘이 됐죠. 아들보다 두살 어린 딸도요. 아들이랑
딸은 학교 다닐 때, 공강 시간 만들어서 일을 도와주고 방학 때는 같이 출퇴근도 했죠. Q. 든든하셨을 것 같아요. A. 아들은 사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이 됐어요. 일손이 하나 빠져나가는구나 했는데, 어느 날 전통주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전통주 만드는 일이 재밌어졌다고요.
저는 너무 반가웠죠. 그런데 남편한테는 이 얘기 바로 못했어요. 눈치가 보여서. 강대표의 아들인 임승규 연구실장은 4년 전 대학을 졸업해 어머니인
강 대표와 의기투합해 본격적으로 다양한 술을 개발하는데 힘쓰고 있다. Q. 임승규 연구실장님께 질문할게요.
술 만드는 일 힘들지 않아요? 취업도 되셨다면서요. A. 물론 힘들죠. 그런데
힘이 든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는 않아요. 어머니가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하시는 일을 어떻게든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먼거였고요. 지금은 제가 술 제조분야를 많이 책임지고 있는데, 제가 만든 술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실 때 보람이 너무 커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Q. 앞으로가 더 기대 되는데요. A. 전통주를 많이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집에서 소주나 맥주를 자연스럽게 찾는 것처럼, 전통주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런 생각으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도 저희 양조장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통주 양조장이 함께 잘 되어야 우리 술이 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전통주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도 더 시간을 들이려고 합니다. 인생의 4분의 1은 자신을
찾아내는데 써라. 그리고 남은 4분의 3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라. 이들과 대화 속에서 팀 페리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 뿐 아니라
술을 만드는 양조장도 다르지 않다. 우리 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아원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방향을 지금까지 찾았다면, 이제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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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마시는 죽향도가
전남 담양군 전통주가 농림축산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하는 '2020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서 탁주 부문 대상을, 약·청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죽향도가의 대대포 막걸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과 토종 벌꿀을 사용, 저온 발효공법으로 제조해 깔끔하며 감칠맛이 뛰어난 프리미엄 탁주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한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탁주부분과 청주 부분에서 최고의 상을 받다니. 하얀 우유빛깔의 대대포 막걸리는 첫 맛은 깨끗하고 맑은 느낌에 목넘김도 전혀 걸쭉하지 않다.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할 만한 막걸리였다. 아마 담양의 특산미와 토종 벌꿀을 첨가한 덕분에 특유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깔끔한 뒷맛이 매력적이다. 12월, 전남지역에 폭설이 내리던 날, 죽향도가를 찾았다. 올해 70이 되셨다는 호탕한 대표님의 무뚝뚝하지만 정이 넘치는 안내와 함께 양조장을 둘러보았다.생각보다 큰 규모이지만 술을 담는 기계 하나하나, 양조장의 바닥과 벽, 그 어디도 흐트러짐 없이 깔끔했다. 술을 담글 때 가장 신경쓰시는 부분이 청결이라고 하셨다. 1. 대대포 막걸리는 특유의 깔끔한 맛이 매력인데요. 혹시 술을 만들 때 특별하게 사용하는 재료가 있나요? 제가 여러 쌀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술을 만들어 봤는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 쌀은 거의 다 비슷해요. 저는 현재 품종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계약재배도 해 보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다가 지금은 담양지역에서 나오는 유기농 쌀을 농협RPC에서 구매해서 술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한 달에 8톤에서 ~10톤의 쌀을 사용하고, 봄, 가을에는 14톤 정도 사용하고 있다.다만, 나만 쓰는 효모가 있습니다. 다양한 자연산 효모를 채집을 해서 그 중에서 좋은 균을 뽑아내어 사용합니다. 그래서 특유의 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따로 연구소가 없어서 베리앤바이오식품연구소에 용역을 통해 특별한 효모를 발견했습니다. 천연 벌꿀은 대대포 막걸리의 자연스러운 단맛을 만들어주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제 고향 구례의 한봉을 사용했었습니다. 지금은 한봉이 다 사라져서 담양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벌꿀을 조금 비싸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2.이번에 우리술 품평회에서 두 부분에서 상을 받으셨다. 대단한 일을 하셨는데요.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제가 오랫동안 술을 담아 지역에서는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타 지역에서도 관심을 갖고 구매를 해주고 있습니다. 막걸리가 워낙 싼 술이라는 인식이 있어 지역민이 구매하기 보단 타 지역에서 조금씩 술 판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3.담양군에서는 지원은 어떤가요? 담양군은 평상시에도 우리 양조장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공장을 만들때도, 기계를 구매할때도 다양한 지원을 받았었습니다. 저는 술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판매라고 생각합니다. 지자체나 국가에서나 마케팅 지원이나 홍보 지원이 없는 편입니다. 좋은 술을 만들면 사람들이 맛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직접 판매하는 건 어렵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판로개척이나 홍보를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주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홍보나 마케팅이 지속적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판매 촉진하는 루트를 개발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를 해봤지만 돈만 많이 들어가고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지금은 작은 자사몰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SNS나 자사몰 사이트에서 조금씩 홍보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4. 술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원료, 둘째는 기술, 세 번째는 청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정성입니다. 술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속에는 원료, 기술, 청결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재료를 찾는 것, 맛있는 술을 만드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 위생적이고 깔끔하게 양조장을 관리하는 것, 이것이 정성입니다. 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좋은 술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 우리술의 관심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술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게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씀은?우리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골출신이지만 막걸리는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이 대한민국에 너무 팽배해 있습니다. 이 땅에 나고 자란 재료로 정성껏 만드는 막걸리는 결코 싸구려 술이 아닙니다. 소비자 분들도 막걸리에 대한 편견을 깨고 구매해 주셨으면 합니다. 10여년간 많은 사람들이 술을 담고 있고 양조장도 늘고 있습니다. 술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적정한 가격으로 많이 파는 전략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술은 주식이 아니고 기호식품입니다. 지금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는데 가격으로 장벽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6.술을 만드는 일, 어떠신가요?담양에서 술을 만든지 20년이고, 우리집안은 1932년 할아버지때부터 술을 담았다. 술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편견과 싸우는 일은 힘들다. 전남지역에서 손에 꼽히게 술을 많이 만들고 있고,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정부나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홍보나 마케팅, 그리고 새로운 판로개척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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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술을 만드는 별빛드리운못
가장 작지만 가장 맛있는 술을 만드는 별빛드리운 못.단맛, 신맛, 쓴맛, 좋은 향미가 자연스러운 탄산감과 함께 모두 느껴지면서 조화로운 술.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주가 되고 싶어. 어느 날 친구가 저녁식사 자리에 직접 빚은 청주를 가져왔는데 그 맛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국의 좋은 청주는 다 마셔봤다고 자부하던 저희였는데 지금까지 마셔본 청주 중에 가장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친구가 처음으로 만든 술이랍니다. 어떻게 수많은 유명한 전통주 명인들이 만든 술보다 생전 처음 술을 빚은 초보자의 술이 더 훌륭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 놀라움과 호기심, 또 친구의 권유로 2014년 가을에 저희는 우리술문화원 ‘향음’이라는 곳에 전통주를 배우러 가게 되었습니다. 향음에서 술을 배우면서 우리 쌀로 우리 술을 빚는 의의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깨우치게 됐습니다. 첫째, 술은 각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구한 가양주 문화를 지니고 있던 한민족에게 술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상징을 나타내고 삶의 여러 순간을 이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가양주 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완전히 말살되었습니다. 게다가 해방 후 75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가양주 문화의 회복은 못 다 이룬 하나의 광복을 이룰 뿐 아니라 수천 년 간 꽃 피워온 우리 민족의 문화 역량을 되살림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풍부한 문화적 잠재력을 전승해 주는 일입니다. 둘째, 농촌 경제에 보탬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식생활의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이 남고 있습니다. 쌀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일이 바로 술빚기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종종 식량이 부족하면 금주령이 내려졌었고, 조선의 쌀을 수탈해서 쌀이 남아돌 게 된 일제는 사케 연구와 세계화에 매진했습니다. 와인, 맥주, 사케 대신에 우리 쌀로 술을 만들어 마시면 우리 농촌에 경제적 지원이 됩니다. 셋째, 농토를 보존하여 식량 안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7%이고 곡물 자급률은 불과 22%(2018년 기준)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 농토는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골의 이곳저곳마다 논과 밭에 시멘트를 깔고 축사가 들어서고 있고 집, 창고,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일은 농민의 수익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식량위기에 대비하는 일입니다. 사케를 많이 소비해서 일본의 농토를 보존해주는 것은 좋으나 우리의 식량을 책임질 농토도 지킬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전통주를 만들어 이 일에 일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즉 가양주 문화는 회복이 매우 더디고 전통주 시장은 축소하는 추세입니다. 청주는 소주와 사케에, 탁주는 수입와인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술을 빚어 자가소비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우리 술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술이 마시기에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고부가 가치 산업이 고수익을 낳는 면에서는 단연 유리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사회를 떠받히는 기반은 아무래도 농업과 제조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양조장 ‘별빛드리운못’을 열어서 전통주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Q: 술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른 모든 요인들을 고정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술의 맛은 다른 요인을 바꾸면 누룩의 영향이 바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어떤 누룩을 쓰면 꼭 어떤 술이 나온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같은 곡물로 만들어도 만든 방식과 환경에 따라 누룩 균이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누룩이 어떤 술을 만들어지게 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큰 경향성까지는 짐작할 수 있고, 한두 번 사용해보면 꽤 정확히 술맛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희 양조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물로 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중 입니다.. 쌀 품종이 술맛에 미치는 영향 역시 거의 연구되어 있지 않습니다. 2019년부터 저희 양조장에서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개량종 쌀과 일제강점기 때 사라지게 된 재래종 쌀들로 탁주, 청주를 빚어 비교 분석하고 있습니다. 술맛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이화학적 분석과 감성평가를 병행해서 통계적 결론을 내려야하기 때문에 엄격히 제어된 시험 제조를 아주 여러 번 해야 하는 어려운 실험입니다. 달 탁주는 단양으로 빚은(한 번 빚는 술) 우리 전통 쌀 술이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고도 얼마나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는가를 보이려는 마음으로 만든 술입니다. 달 탁주의 재료는 물, 찹쌀, 밀누룩 세 가지입니다. 물론 거기에 홍성의 깨끗한 자연의 바람과 소리도 들어가고, 긴 태동의 시간과 저희의 정성과 자부심이 차곡히 들어갑니다. 물과 쌀과 누룩의 비율은 대개는 15L : 10kg : 1kg 입니다만 바꾸기도 합니다. 저희 양조장에서는 모든 술을 상온에서 제조합니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발효의 기간이 달라집니다. 항온실에서 제조할 때처럼 ‘몇 도에서 몇 일간 발효한다’라는 공식이 없습니다. 발효 중인 술의 상태를 보고 발효를 멈춥니다. 겨울에 한참 추울 때는 2-3주가 더 걸리기도 합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다양한 술맛을 내기 위해 일부러 발효기간을 다르게 하기도 합니다. 달 탁주의 맛은 한국 음식의 맛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한국의 음식은 맛의 복합성과 조화로움, 그리고 여운을 추구합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은 섞기와 띄우기(발효)입니다. 특정 음식재료의 순수한 맛을 하나씩 보려는 철학과는 사뭇 다릅니다. 술은 이미 발효음식이니 저희가 술을 최종적으로 만들 때는 ‘섞기’를 적용합니다. 영어로 블랜딩이지요. 목표로 하는 달술의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좋은 향미가 자연스러운 탄산감과 함께 모두 느껴지면서 조화로운 것입니다. 또 맛이 싹 사라져 끊기지 않고 여운을 남겨 생각 속에 남게 하는 것입니다. 술 섞기는 쉽지 않습니다.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평소에 숙성 중인 각 술통마다 맛의 변화를 일일이 적어놓았다가 술 섞기를 할 때 필요한 맛들을 고르게 꺼냅니다. 이 술들을 섞을 때 처음에는 많이, 나중에는 점차 한 번에 섞는 양을 줄여나갑니다. 원하는 맛에 근접했을 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섞어야 합니다. 술을 섞다 보면 반 국자만으로도 술 전체의 맛이 한 순간에 달라지는 마술과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희의 경험에 따르면 두 개의 보통의 술을 잘 섞으면 더 훌륭한 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네 개의 평범한 술을 잘 섞으면 더욱 더 훌륭한 술이 나오기도 합니다. 단맛이 강한 술에 다른 단맛 강한 술을 넣으면 단맛이 줄기도 합니다. ‘1 더하기 1’이 ‘2’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술섞기 마술입니다. 이렇게 최적의 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고 어느 정도의 뛰어난 미감과 맛 상상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술을 만들겠다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정성이 있으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술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Q: 전통주의 과제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통주 시장이 크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먼저 연구 개발의 문제를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주의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정부 부처나 출연 연구소, 대학의 생물이나 식품 관련 학과, 그리고 개별 양조장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주 연구나 제품개발은 대단히 미진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복합균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과정에 대한 이해나 그에 대한 개선책에 대한 연구가 거의 안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경험 지식을 도제적으로 습득한 영세 양조장은 배운 지식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연구 개발은 할 엄두를 낼 수 없으며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비와 분석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정부가 전통주 관련 연구를 연구소나 대학에만 의존하지 말고 전통주를 연구하고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양조장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보완들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술 산업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뀐 주세법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일제가 강점기에 주세령을 반포하여 자국의 쌀술인 사케를 청주라 하고, 조선의 청주는 약주라 명명했는데 이를 해방 후 75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대한민국의 주세법은 우리의 맑은 쌀술에 청주란 이름을 못 쓰게 하고 있습니다. 사케 식으로 만든 맑은 술만 청주라는 이름을 쓰게 하고 있는 주세법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전통주는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으며,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는 뛰어난 음식이고 세계의 문화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술 산업이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개정되고 관련 부서가 정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전통주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에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전통주의 재료는 쌀, 밀, 녹두, 보리, 고구마 등 우리가 늘상 음식으로 먹는 전분류입니다. 그래서 이런 재료를 가지고 발효시켜 만든 술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입맛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밥과 우리 반찬을 먹지 않고 육고기, 빵, 스파게티, 치즈 등을 주식으로 삼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서양 음식의 반주에는 맥주나 와인이 더 어울릴 수 있고 전통주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전통주는 식생활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도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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